[다큐에세이 여기이사람 112회] 국가 폭력 희생자 김양기 씨의 끝나지 않은 길<br /> 일제강점기를 거쳐 외세에 의한 해방과 분단, 전쟁이라는 굴곡진 현대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우리의 민중들은 억울하게 죽어가고, 말 못할 사연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군사정부 시절, 억압적인 역사관과 반공이데올로기는 또 다른 희생자를 양산했으니 국가폭력에 의해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억울한 이들이 생겨났다. 여수의 김양기 씨도 그중의 한 사람.<br /> <br /> 서른 일곱 살에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은 이후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된다. 김양기 씨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인 1950년 유복자로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나기 두 달 전 그의 아버지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이승만 정부에게 죽임을 당했다. 여수에서 배로 두 시간 거리인 남해의 무인도 애기섬 앞바다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연은 37년이 흐른 뒤 아들이 간첩누명을 받는 원인이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일본에 살던 작은 아버지, 월북한 큰형 등 평범하지 않은 가족사는 간첩을 양산하던 당시 정권에 좋은 먹잇감이었던 것.<br /> <br /> 금세공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온 김양기 씨는 광주505보안대에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당했고,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 근거가 되어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5년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난 그는 국가를 상대로 재심을 청구했고, 간첩누명을 받은 지 23년 만에 무죄선고를 받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과 같은 이들의 무죄투쟁을 위해 힘을 쏟아왔고,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로 활동하며 여순사건의 진실규명과 희생자를 위한 위령탑 건립에 힘쓰고 있다.<br /> <br /> 현대사의 비극을 온 몸으로 겪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김양기 씨의 사연을 소개한다.<i class="fa fa-language transViewIcon clickable" title="Translati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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